고사성어 53

中石沒鏃 (중석몰촉)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 시대의 이광은 영리하고 용맹한 흉노족의 땅에 인접한 농서 충신으로써 특히 궁술과 기마술이 뛰어난 용장이었다고 한다. 문제 14년 , 이광은 숙관을 침범한 흉노를 크게 무찌르고 공을 세워서 시종 무관이 되었다. 또, 그는 황제를 호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혼자서 큰 호랑이를 잡아 천하에 그 용명을 떨치기도 했는데 그 후 이광은 숙원이었던 수비대장으로 전임이 되자 변경의 성새를 전전 하면서 흉노를 토벌하기 시작했다. 그때에도 백전 백승으로 전투에 이겨서 상승 장군으로 통했다고 한다. 그래서 흉노는 그를 '한나라의 비장군' 이라고 부르며 감히 처들어올 생각을 못했다. 어느 날, 그는 황혼이 질 무렵 초원을 거닐다가 어둠 속에서 몸..

樂不思蜀 (낙불사촉)

즐거움에 젖어 고국인 촉(蜀)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 삼국시대 말, 유비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선(劉禪)이 보위에 올랐으나 무능한 유선은 나라를 보전할 그릇이 못되었습니다. 위(魏)가 공격하자 스스로 손목을 묶고 성문을 열어 투항 하였습니다. 위원제(魏元帝) 조환(曹奐)은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하고 위나라 도읍에 살게 했습니다. 하루는 대장군 사마소(司馬昭)가 연회를 열어 유선을 초대하고 촉(蜀)나라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을 불렀습니다. 촉 사람들은 그 음악을 듣고 고향 생각에 슬픔이 젖었지만, 유선만은 전혀 슬픈 기색이 없이 즐겼습니다. 사마소는 그저 즐거워하는 유선에게 고국 촉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유선은 '여기가 즐거우니 촉이 생각나지 않는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유래하..

不飛不鳴 (불비불명)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음. 초나라 장왕(莊王)은 즉위한 지 3년 동안 호령 한 마디 내리지 않고 주색에만 빠져 있으면서 이를 간하는 자가 있으면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고 호언했다. 이를 보다 못한 신하 중에 오거(伍擧)라는 자가 장왕을 찾아가 아뢰었다. “폐하, 소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어보겠사옵니다.” “어디 들어봅시다.” “산 숲속에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와 앉았는데 삼년이 되도록 꼼짝도 하지 않으며,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를 과연 새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장왕도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지만 내색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삼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았지만, 한 번 날면 하늘에 닿을 것이요,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네. 경의 뜻은 알았으니 물러가도록 하게.” 그러나 몇 달이 ..

破釜沈舟 (파부침주)

결사항쟁의 자세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 항우(項羽) 는 진나라 주력부대를 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면서 부하들에게 사흘 치 식량만 챙긴 후 솥을 모두 깨뜨리고 배도 부수어 침몰시키라 명령하였다. 솥이 없어야 가볍게 이동한 후 적을 물리칠 수 있으며, 이긴 뒤에 진나라 솥으로 밥을 해 먹으면 된다고 말 하였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마저 없었으므로,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은 출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이렇게 아홉 번을 싸우는 동안 진나라의 주력부대는 궤멸되었다.

愚公移山 (우공이산)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이룰 수 있다. 태행산(太形山)과 왕옥산(王屋山)은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큰 산이며, 기주(冀州)의 남쪽과 하양(河陽)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북산(北山)에 우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90세였으며, 이 두 산을 마주 보고 살았습니다. 산 북쪽은 통행을 할 수 없게 막혀 있어서 거기를 지나려면 멀리 돌아 가야 했습니다. 어느 날, 우공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좋은 방법을 의논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과 함께 험한 두 산을 평평하게 만들어, 예주(豫州) 남쪽으로 바로 길이 통하고,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대부분 그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우공의 아내는 의문을 제..

兎營三窟 (토영삼굴)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 풍환(馮驩)은 제(齊)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던 자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괴짜였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 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다.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 : 현재 산동성)에 1만 호의 식..

三顧草廬 (삼고초려)

오두막 집을 세번이나 돌아보다. 유비가 제갈량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것에서 유래하며, 제갈량은 유비의 됨됨이를 살피기 위해서 유비를 두 번이나 바람맞히고, 세 번째는 초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주인으로 섬기기 전에 과연 인간성이 진실하여 자기 인생을 맡길 만 한지 또한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지를 살핀 것이지요. 나중에 유비가 초당 앞에서 잠이 깨기를 기다렸습니다.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反哺之孝 (반포지효)

자식이 자라 어버이를 봉양하며 길러주신 은혜를 갚는 효행 이밀(李密)은 진(晉)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지만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합니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고 크게 화내면서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까마귀는 부화한 후에 60일 동안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에는 새끼가 자라서 먹이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螳螂捕蟬 (당랑포선)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면 결국 큰 해를 입게 된다. 전국시대 오나라 왕이 싸움을 무척 좋아하여 그의 강대한 병력을 믿고 이웃 나라를 침략했다. 그리하여 오나라는 끊일 사이 없는 전화 속에서 민생은 도탄에 빠질 지경이었다. 한번은 오왕이 또 초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자 오나라 문무대신들은당시의 정세로 보아 다시 출병을 하게 되면 오나라에 대단히 불리해질 것을 우려하여 오왕에게 계획을 취소하도록 극구 권하였다. 그러나 오왕은 본디 성격이 강직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 마는 고집불통인지라 이러한 권유를 듣고 침략 계획을 스스로 포기하기 는커녕 오히려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렸다. "무릇 누구도 초나라 침공을 저지하는 자는 용서없이 모두 처단할 것이다." 대신들이 비록 오왕의 힘에 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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