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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言逆耳 (충언역이)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 는 뜻으로 바르게 타이르는 말일수록 듣기 싫어함을 이르는 말 중국 秦(진)나라의 폭정에 대항해 일어난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이 각축을 벌이다 수도 咸陽(함양)을 유방이 먼저 차지했는데, 보물과 미색에 빠진 유방이 궁에 머물려고 하자 장군인 樊噲(번쾌)가 못마땅한 어투로 출궁을 간언을 하였습니다. "진왕(秦王)의 폭정과 방탕함을 못 이겨 진나라가 멸망했습니다. 패공(覇功)께서 궁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진나라가 무도했던 탓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일개 현(縣)의 현령이었던 패공께서 어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밖에서는 진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제후들의 쟁탈전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패공께서 낮잠이나 주무시고 궁녀들과 노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吳越同舟 (오월동주)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단결하여 서로 돕고 마음을 함께한다는 뜻. 오월동주는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탄다는 말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여기에서 비롯했다. “사이가 나쁜 사람끼리 같은 장소나 처지에 놓여 같은 목적을 이루려고 협력한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두 나라는 으르렁대며 싸우던 원수이다. 그들이 한 배를 탄다면 얼마나 죽기 살기로 싸울까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군대를 잘 부리는 이는 솔연과 같아야 한다. 솔연은 상산에 사는 뱀으로, 머리를 치면 꼬리가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그렇다면 군대를 솔연처럼 이끌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서로 미워하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를 탔다고 해 보자..

自勝者强 (자승자강)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한 자이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다 할 것이고, 자기를 아는 자는 현명하다 할 것이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다 할 것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 할 것이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자신과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꾸준함을 가지고 스스로 지켜 매진해 나가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자라 할 것이며, 자기 분수를 아는 자는 그 지위를 잃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장수한다고 할 것이다.

與虎謀皮 (여호모피)

사구 (司寇) - 사법부의 수장 삼환 (三桓) - 계손씨, 숙손씨, 맹손씨 (노나라의 실권자이며 공자와 정치적 대립 위치) 춘추시대에 노(魯)나라 정공(定公)이 공자(孔子)를 사구(司寇)에 임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정공은 그 전에 좌구명(左丘明)을 불러, 그 일에 대하여 삼환(三桓)과 의논하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좌구명은 삼환이 공자와 정치적 이해가 상충하므로 반대할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의 우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가죽 옷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주(周)나라 사람이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가죽 옷을 만들기 위하여 여우들과 그 가죽을 벗기는 일을 의논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하여 양들과 그 고기를 얻는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우들은 서로를 거느리고 높은..

近墨者黑 (근묵자흑)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 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스승의 행실을 보고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승을 닮게 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보고 듣는 것이 언제나 그릇된 것뿐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 고사성어아다.

中石沒鏃 (중석몰촉)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 시대의 이광은 영리하고 용맹한 흉노족의 땅에 인접한 농서 충신으로써 특히 궁술과 기마술이 뛰어난 용장이었다고 한다. 문제 14년 , 이광은 숙관을 침범한 흉노를 크게 무찌르고 공을 세워서 시종 무관이 되었다. 또, 그는 황제를 호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혼자서 큰 호랑이를 잡아 천하에 그 용명을 떨치기도 했는데 그 후 이광은 숙원이었던 수비대장으로 전임이 되자 변경의 성새를 전전 하면서 흉노를 토벌하기 시작했다. 그때에도 백전 백승으로 전투에 이겨서 상승 장군으로 통했다고 한다. 그래서 흉노는 그를 '한나라의 비장군' 이라고 부르며 감히 처들어올 생각을 못했다. 어느 날, 그는 황혼이 질 무렵 초원을 거닐다가 어둠 속에서 몸..

樂不思蜀 (낙불사촉)

즐거움에 젖어 고국인 촉(蜀)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 삼국시대 말, 유비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선(劉禪)이 보위에 올랐으나 무능한 유선은 나라를 보전할 그릇이 못되었습니다. 위(魏)가 공격하자 스스로 손목을 묶고 성문을 열어 투항 하였습니다. 위원제(魏元帝) 조환(曹奐)은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하고 위나라 도읍에 살게 했습니다. 하루는 대장군 사마소(司馬昭)가 연회를 열어 유선을 초대하고 촉(蜀)나라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을 불렀습니다. 촉 사람들은 그 음악을 듣고 고향 생각에 슬픔이 젖었지만, 유선만은 전혀 슬픈 기색이 없이 즐겼습니다. 사마소는 그저 즐거워하는 유선에게 고국 촉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유선은 '여기가 즐거우니 촉이 생각나지 않는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유래하..

不飛不鳴 (불비불명)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음. 초나라 장왕(莊王)은 즉위한 지 3년 동안 호령 한 마디 내리지 않고 주색에만 빠져 있으면서 이를 간하는 자가 있으면 절대로 살려두지 않겠다고 호언했다. 이를 보다 못한 신하 중에 오거(伍擧)라는 자가 장왕을 찾아가 아뢰었다. “폐하, 소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어보겠사옵니다.” “어디 들어봅시다.” “산 숲속에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와 앉았는데 삼년이 되도록 꼼짝도 하지 않으며,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를 과연 새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장왕도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지만 내색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삼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았지만, 한 번 날면 하늘에 닿을 것이요,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네. 경의 뜻은 알았으니 물러가도록 하게.” 그러나 몇 달이 ..

破釜沈舟 (파부침주)

결사항쟁의 자세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 항우(項羽) 는 진나라 주력부대를 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면서 부하들에게 사흘 치 식량만 챙긴 후 솥을 모두 깨뜨리고 배도 부수어 침몰시키라 명령하였다. 솥이 없어야 가볍게 이동한 후 적을 물리칠 수 있으며, 이긴 뒤에 진나라 솥으로 밥을 해 먹으면 된다고 말 하였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마저 없었으므로, 병사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은 출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이렇게 아홉 번을 싸우는 동안 진나라의 주력부대는 궤멸되었다.

愚公移山 (우공이산)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이룰 수 있다. 태행산(太形山)과 왕옥산(王屋山)은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큰 산이며, 기주(冀州)의 남쪽과 하양(河陽)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북산(北山)에 우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90세였으며, 이 두 산을 마주 보고 살았습니다. 산 북쪽은 통행을 할 수 없게 막혀 있어서 거기를 지나려면 멀리 돌아 가야 했습니다. 어느 날, 우공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좋은 방법을 의논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과 함께 험한 두 산을 평평하게 만들어, 예주(豫州) 남쪽으로 바로 길이 통하고,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대부분 그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우공의 아내는 의문을 제..

兎營三窟 (토영삼굴)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 풍환(馮驩)은 제(齊)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던 자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괴짜였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 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다.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 : 현재 산동성)에 1만 호의 식..

三顧草廬 (삼고초려)

오두막 집을 세번이나 돌아보다. 유비가 제갈량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것에서 유래하며, 제갈량은 유비의 됨됨이를 살피기 위해서 유비를 두 번이나 바람맞히고, 세 번째는 초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주인으로 섬기기 전에 과연 인간성이 진실하여 자기 인생을 맡길 만 한지 또한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는지를 살핀 것이지요. 나중에 유비가 초당 앞에서 잠이 깨기를 기다렸습니다.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反哺之孝 (반포지효)

자식이 자라 어버이를 봉양하며 길러주신 은혜를 갚는 효행 이밀(李密)은 진(晉)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지만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합니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고 크게 화내면서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까마귀는 부화한 후에 60일 동안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에는 새끼가 자라서 먹이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螳螂捕蟬 (당랑포선)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면 결국 큰 해를 입게 된다. 전국시대 오나라 왕이 싸움을 무척 좋아하여 그의 강대한 병력을 믿고 이웃 나라를 침략했다. 그리하여 오나라는 끊일 사이 없는 전화 속에서 민생은 도탄에 빠질 지경이었다. 한번은 오왕이 또 초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자 오나라 문무대신들은당시의 정세로 보아 다시 출병을 하게 되면 오나라에 대단히 불리해질 것을 우려하여 오왕에게 계획을 취소하도록 극구 권하였다. 그러나 오왕은 본디 성격이 강직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 마는 고집불통인지라 이러한 권유를 듣고 침략 계획을 스스로 포기하기 는커녕 오히려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렸다. "무릇 누구도 초나라 침공을 저지하는 자는 용서없이 모두 처단할 것이다." 대신들이 비록 오왕의 힘에 겨운..

絶纓之會 (절영지회)

남에게 너그러운 덕(德)을 베푸는 것을 비유 초장왕(楚莊王)이 밤에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며 놀다가 촛불이 꺼졌는데, 어떤 신하가 그 틈을 타 장공이 총애하는 미인을 끌어안고 희롱하였다. 미인은 그 신하의 갓끈을 끊은 다음 왕에게 촛불을 밝혀 그 사람을 색출해 벌할 것을 청했다. 그러나 장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모든 신하들에게 갓끈을 끊게 한 후 불을 밝히라고 명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도록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3년 후 초나라는 진(晉)나라와 싸우게 되었는데 죽을 힘을 다해 싸운 장수가 있어 승리했는데, 물어보니 바로 3년 전 왕이 구해 준 그 사람이었다. 사이버백과 사자성어

伯牙絶絃 (백아절현)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한다.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에게는 종자기(鐘子期)라는친구가 있었습니다. 백아의 연주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훌륭해 자네의 연주를 들으면 어느 때는 태산이 솟아오르는듯 하고, 어느 때는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평화롭다네." 종자기는 백아의 뛰어난 거문고 실력에 감탄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종자기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몹시 비통해하던 백아는 스스로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렸다고 합니다. "내 연주를 알아주는 이는 오직 종자기뿐이었으니, 이제 그가 없으니 세상에서 그 누가 나를 알아주겠는가!" 이후 백아는 두 번 다시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無大疑者無大覺 (무대의자무대각)

의문을 갖지 않는 사람은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익숙해지다 보니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 지금까지 이래왔어! 이렇게 하라고 했어! 이렇게 하는 게 편해!”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당연시 생각하고, 당연시 행동하고, 당연시 일을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일상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현재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의문을 하게 된다면 조금 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고,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의문이 창피하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대충 넘어가고, 주변의 반응이 무서워 아예 입을 굳게 다물고 맙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 선생’은 ‘의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

易子敎之 (역자교지)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친다는 뜻. 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자기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공손추는 공자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음이 궁금해 물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형편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르게 하라고 가르친다. 바르게 하라고 가르쳐도 그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자연 노여움이 따른다. 그러면 도리어 부자간의 정이 상하게 된다. 이에 자식은 아버지는 나를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지만 아버지 역시 바르게 못한다고 느낀다. 그러기에 옛날 사람들은 자식을 서로 바꿔 가르쳤다. 부자간에는 잘못했다고 책하지 않는 법이다. 잘못을 꾸짖으면 서로 정이 난다. 정이 멀어지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또 있겠는가?" 라고 답했다. ..

木人石心 (목인석심)

의지가 굳어 어떠한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서진(西晋)때 사람인 하통은 학문이 깊고 다재다능한 데다 달변이어서 그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주변사람들이 벼슬을 권했지만 세속적인 명리에 초연한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느때 하통은 볼 일이 있어 수도인 낙양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태위(太尉)라는 벼슬을 하고 있는 가충(賈充)이 하통을 찾아왔다. 가충은 원래 위나라의 대신이었는데 서진 건국에 이바지한 공적 때문에 한창 위세를 떨치고있는 사람이었다. 하통의 소문을 듣고 있던 가충은 그를 수하에 둠으로써 자기의 위세를 드높일 속셈으로 하통을 찾은 것이었다. 가충은 온갖 감언이설로 회유했지만 하통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떠한 말로도 하통을 움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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